그뭄달

그뭄달 drizzle 2009. 9. 30. 02:24

시몽은 이따금 건널목 저편에서 어쩐지 쑥스러운 듯 웃으며 걸어오는 뽈르를 바라보던 때를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오로지 시몽 당신만 봐주었으면 해 하는 듯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는 그뭄달을 닮았었다. 그 웃음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뽈르의 집까지 가지 않고 그녀의 집으로 가는 마지막 건널목 빵집앞에서 기다리겠다고 시몽은 말하곤 했다. 하긴 가끔 그녀 집앞에 있는 호텔 주차장까지 가서 기다리는 때도 있었지만 그녀의 웃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시몽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가운데 남몰래 살그머니 그뭄달이 뜨는 그 순간을 너무도 좋아했다.

뽈르가 프랑스로 떠난지 3년, 그동안 단 한 번도 그 곳을 지나친 적도 없던 시몽은 그 날 퇴근 후 저녁 그 건널목에 다시 섰다. 사람들은 여전히 복작대고 빵집도 건널목도 여전했지만 그뭄달은 더 이상 뜨지 않았다. 있어야 할 것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고 변한 것은 그다지 없는데 오직 그 그뭄달만이 다시 뜨지 않았다.

Posted by 여름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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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공평하지도 동일하지도 않다.

사랑은 공평하지도 동일하지도 않다. 일상단상 2009. 9. 30. 01:45

나는 늦게까지 깨어있는 경우가 많다. 밤에 뭘 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와 세 번 이상 만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밤 늦게 전화를 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요즘은 유독 사랑때문에 고민하는 사람, 그래서 잠 못이루는 사람들이 종종 전화를 하곤 한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국 같은 이야기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래서 불안하고 슬프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는 특별히 해줄 이야기가 없다. 그저 가만히 들어줄 뿐이다. 그게 지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이자 배려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속으로는 그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을까 곰곰 생각하기는 한다. 그래도 역시 마땅한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무슨 말이 그 사람들의 힘든 시간을 줄여줄 수 있겠는가. 내가 같은 이유로 뜬 눈으로 밤을 새우던 날 무수히 많은 자문과 자답을 했지만 아무것도 소용없었지 않았나. 그저 시간이 약이라는 진리만 깨달았을 뿐이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정확히 알고는 있는 것일까. 내가 어떤 대상에게 갖는 특별한 감정 전부를 과연 사랑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다보니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그런 생각까지. 생각해보면 나의 사랑이 상대방의 사랑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나의 달뜬 가슴, 그것으로 세계가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고 기뻐했던 것이다. (상대방의 세계는 여전히 변함 없이 똑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은근 부끄럽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모든 사람들이 한치의 오차 없이 동일한 정의를 갖는다면 어떨까. 이런 저런 요건에 맞는 감정이라면 사랑이 맞소이다- 하고 평가해주는 사랑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의 등급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등급평가 기준이 절대적이어야지 상대적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사회적 문제제기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 1등급 보유자, 어쩐지 낯 뜨거운 레벨이라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동일하게, 같은 시기에 다가오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 아파할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정의 혹은 의미를 갖도록 바라는 마음을 은연중에 갖고 있기 때문에 힘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감정의 무게를 저울질하기보다는 인연 자체를 얻기 위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 사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으면서도 늘 그 치열함 가운데로 접어들면 잊어먹기 십상인가보다. (그나마 요즘 이런 고민을 말하는 사람이 귀해지기도 했다. 사랑의 등급이 아니라 인간의 등급이 더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

인연


요 며칠 잠잠한 것을 보면 늦은 시간 나를 곤란하게 했던 몇몇 지인들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도 만약 늦은 새벽 내 잠을 깨우는 사람들이 또 있다면 그들과 이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다. 즉효는 아니더라도 아주 약간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나는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 그래도 이사람들아 참고 견뎌서 꼭 사랑을 얻으시게..없는 사람한테 물어보는 자네들 심정은 오죽하겠나만 나는 죽을 맛이라네.

사랑은 공평하지도, 동일하지도 않다. 그래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것끼리는 끼우거나 붙이는 것이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Posted by 여름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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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know

never know drizzle 2009. 9. 29. 01:15
뽈르는 모르고 있다.
아마 전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시몽은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 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연락.
시몽은 긴 시간을 생각했다.
어떠한 말을 해야할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던 시몽은 어느 날 출근 길 전철 안에서
머리를 올려 묶은 모습과 뒤에서 바라본 뺨의
모양이 뽈르와 닮은 여자를 보았다.

시몽은 가슴이 아팠다.
현실같지 않은 햇살이 내리 쬐던 그 아침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건만 그의 가슴은 아플정도로 다시 설레었다.

결국 시몽은 마음 먹었다.
그의 가슴에 간직한 것을 솔직히 말하기로.
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그의 가슴이
말하고 있다.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않는 변하지 않은 사실.
시몽은 여전히 그녀를 생각하고 그리워 하고 있다.

그 사실이 그의 인생을 또 다시 휘저어 놓는다 해도,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결말이 다시 한 번 기다린다고 해도,
혹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혼잣말이라 할지라도.

시몽은 여전히 그 시간을 떠나보내지 않고 있다.
Posted by 여름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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